2015년 1월 4일(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1월 4일(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진정한 찬양의 이유
에베소서 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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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살펴보기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자마자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쏟아 내었습니다. 그 찬양이 기록된 1장 3~14절은 200개가
넘는 단어로 이루어진 한 개의 문장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격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면, 지금 바울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알게 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감탄이며 그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입니다. 기도 단락에는 에베소서 전체의 주제가 다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모두 자신과 같은 찬송을 부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그들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분명하고 깊게 알아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찬양에 이어 곧바로 그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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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속으로
1.
바울은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면서 가장 먼저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게 되는 열쇠는 무엇입니까?(17)
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사실 생각처럼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한 조금은 교리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1:19, 20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자연을 보면서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을 엿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일컬어 ‘일반 계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단서인 ‘일반
계시’ 앞에서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축소하고 왜곡시켜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1-23)
다시
말해, 타락한 인간은 일반 계시 앞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거부합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지식이 탁월해서일까요? 우리가
남들보다 조금 더 진실되거나 지혜로워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그 어떤 조건이나 능력도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영적인 진리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오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도움을 베푸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이렇게 성령께서 직접 우리의 마음 속에 구원에 관한 진리의 빛을 비추시는 것을 ‘특별 계시’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2.
지혜와 계시의 영, 즉 성령께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야 알 수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18, 19)
ð 바울은 성령께서
마음의 눈을 밝히시면 보게 되는 것을 세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과 그 영광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우리 삶의 현실이 지금은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그 일을 믿음 안에서 내다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함’입니다. 기업이란 누군가에게 할당된 몫, 유산 등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사용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의 기업이라고 말씀하기도 하시고, 이스라엘을 하나님 자신의 기업이라고 말씀하기도
하십니다. 이 본문(1:18)에서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신약의 성도들과 그 교회를 의미합니다. 즉, 성령께서 마음의 눈을 밝히시면 성도는 교회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세
번째는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어떠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의 눈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항상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 영적인 의미는 더더욱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온 우주의 회복을 위해 행하고 계시는 일들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
안에 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은 맥이 빠질 때가 많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면 우리는 그 능력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됩니다.
3.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20-22) 이로 미루어볼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됩니까?
ð 앞서 살펴
본 ‘부르심의 소망’,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함’, ‘그의 힘의 위력으로 베푸신 능력’이 가장 생생하게 나타난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님을
살리셨고, 온 우주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관계로 끝나는데 반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머리이신 예수님의 몸으로
삼으셨습니다(22). 다시 말해, 교회는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는 존재입니다.
찬양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그것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피조물의 탁월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리는 것도 즐거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게 된다면 그 기쁨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학문으로도 연구로도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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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향하여
1. 당신은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 왔습니까? 그 노력들은 어떤 면에서 성과가 있었으며 어떤 면에서 한계를 노출했습니까? 그
한계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ð 우리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설명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지혜롭게 말해도, 아무리 강력한 논리로 무장해도, 아무리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어도, 그 사람 마음 속에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그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성령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노력이 당장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자신을 탓하며 낙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자신부터 성령님의 도우심 안에서 눈을 뜨고 ‘부르심의 소망’,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함’, ‘그의 힘의 위력으로 베푸신 능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사랑하는 누군가가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모든 성도들의 소원일
것입니다. 당신은 이 순간 누가 떠오릅니까? 그 사람이 떠오른
이유를 나누어 주시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