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큐티 2017년 2월 12일 소그룹 성경나눔 해설
2월 12일(주일) 소그룹성경나눔
홍해 가운데 마른 땅을 내신 하나님
출애굽기 14:21-31
l 흐름 살펴보기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안내와 보호를 받으며 홍해 앞에
다다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기적으로 바로의 군대를 진멸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로 이미 작정하셨습니다. 바로의 마음을 더욱 완악하게 함으로 홍해까지 따라오도록 유인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로 앞 바닷가에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군대가 막상 코앞에 다가오자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나님의 숱한 기적을 맛보고도 그들은 노예시절 그들을 다스리던 바로의 위엄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는 다급하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지금은 기도할 때가 아니라 이미 주신 약속을 믿고 순종할 때라고 하십니다(14:15). 믿음을
갖고 백성에게 앞으로 전진하라 명령하면 하나님께서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이 끝나자 하나님의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백성과 바로의 군대 사이로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l 성경 속으로
1.
홍해의 물을
물러가게 한 바람은 어디서 왔으며 얼마 동안 불었습니까?(21절)
■ 찰톤 헤스톤이 주연한 ‘십계’라는 영화를 보면 홍해를 건넌 사건이 아주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이 지팡이를 내밀자 갑자기 바닷물이 쫙 갈라지면서 좌우에 벽이 되는 것이지요. 성경의 묘사보다 훨씬 극적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동풍’을 사용하셨습니다. 사막
쪽에서 불어오는 마른 바람입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바람이 바닷물을 물러가게 했습니다. 거대한 바람이 밤새 불어 왔고, 하나님께서는 밤새도록 바로의 군대를 구름기둥으로 막아 서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밤새도록’의 시간 안에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쓰여 졌습니다.
2.
홍해를 가르신
사건을 묘사하는 문장의 주어를 찾아보세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 대부분의 문장에 ‘주님’(개역개정판, ‘여호와’)이
주어입니다(21절, 24절,
25절, 26절, 27절, 30절). 이것은 홍해를 가르신 기적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인공이 되셔서 행하신 사건입니다. 손수 구름기둥과 불기둥 사이에 계시면서 이집트 바로의 군대를 관찰하시고 그들을 이끌어 수장시키셨습니다.
■ 다음으로 나오는 주어는 ‘모세’입니다(21절, 27절).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실 때에는 인간을 사용하십니다. 모세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자신의 역사를 드러내는 일에 초대하십니다.
■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이집트 사람들’이
주어입니다(22절, 23절).
이들은 모두 수동적인 존재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을 일방적으로 누리는 존재요, 이집트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구원과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높아진 것은 낮추고, 낮아진 것은 높이십니다.
3.
홍해를 건넌 사건을 통해 이집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각 무엇을 알게 되었나요?(25절, 31절)
■ 이집트 사람들은 홍해 바다 한복판에서 병거의 바퀴가
벗겨지며 전진이 어렵게 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 이스라엘은 홍해사건을 통해 자신들을 불러내신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뿐 아니라 ‘주님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인간 모세에 대한 신뢰가 싹튼 것입니다.
l 삶을 향하여
1.
홍해가 갈라지듯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으로 문제가 해결된 경험들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보세요. 또 그 사건에서 하나님은
내게 어떤 역할을 맡기셨는지도 이야기해 보세요.
ð 본문에서
주어가 하나님, 모세, 사람들로 나오듯 내 삶에서 벌어진
일도 하나님을 주어로 삼아 이야기해봅시다. 내가 주어가 되면 내 자랑이 될 뿐 남들에게 은혜를 끼치지는
못합니다. 주어이신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신 것은 조금만 드러내면 됩니다.
2.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이집트 바로와 그 군대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위로하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습이 ‘사랑의 하나님’ 이미지와 충돌한다고 여기지 않으시나요?
ð 겉으로 보면
바로와 군대가 몰살당했으니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출애굽과 홍해사건에서 바로를 향해
불쌍하다고 먼저 위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정의가 훼손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말할 때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그 사랑 때문에 사회의 정의가 훼손되는 상황입니다. 누가 보아도 악인은 사람을 변호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
악인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이 수두룩한데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과 헌신적인 도움은 주지 않은 채로 가해자를 감싸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크게
훼손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회적 정의를 세우며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체제의 피해자들에게는 무조건적 용서와 사랑을 선포하셨지만,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당원들에게는 서슬 퍼런 책망과 심판을 외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랑은 정의를 포함합니다.
3.
위에서 나눈
것과 같은 일들이 나 자신과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정의의 하나님은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ð 하나님의
사랑에는 미움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심으로 악인을 사랑합니다. 악을 미워하는 것과 악인을 미워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지만 악인을
사랑하려면 그가 지은 악에 대해서는 철저한 심판이 필요합니다. 이런 심판을 통해 그가 회개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도 않은 악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선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에게 아무 소용도 없을뿐더러 또 하나님의 정의를 무너뜨리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