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222(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6:22-27 / 가나안 정복 전쟁의 의미

* 흐름 살펴보기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면서 이스라엘은 본격적인 가나안 진입을 시도합니다. 정복 전쟁의 첫 상대였던 여리고는 공교롭게도 가나안에서 가장 강력한 성 중의 하나였습니다. 여리고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냈고, 그들은 라합이라는 기생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라합의 집을 보호할 것을 약속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면서 요단강을 건넜고, 할례와 유월절을 치르며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수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영적으로 잘 준비된 이스라엘이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무기가 아니라 언약궤와 횃불을 들고 일주일간 하루에 한 바퀴씩 돌다가 일제히 소리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성 여리고를 무너지게 하셨고, 이스라엘은 일제히 성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진멸했습니다.


* 말씀 살펴보기
1. 여리고성이 진멸되고 있는 동안, 여호수아가 두 정탐꾼에게 명령한 것은 무엇입니까?(22) 이 명령은 무엇에 근거한 것입니까?(6:17, 2:12-14)  

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진압하고 점령하는 동안, 일전에 그 성을 정탐했던 두 사람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보호해 주었던 기생 여인 라합과 그 가족을 구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을 정복할 때에는 그 성의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급박한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스라엘에게는 라합의 가족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던 셈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이미 백성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 사항이라는 점에서도(6:17) 충분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과 라합 사이에 맺어진 언약 때문입니다(2:12-14).
ð  흐름 살펴보기에서 설명한 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전에 그 땅과 그 첫 번째 성인 여리고를 살펴 보도록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었습니다. 그 땅을 정탐하러 들어갔던 두 사람이 택한 은신처는 기생라합의 집이었는데, ‘기생이라 번역된 히브리어는 원래 창녀를 뜻합니다. 낯선 이방인으로서 여리고 성에 숨어들어가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리고 왕은 곧바로 정탐꾼이 들어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2:2) 그들을 추적합니다. 그러나 라합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그리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그 와중에 라합은 자신이 그들을 돕는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온 우주에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같은 분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2:11).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정탐꾼들을 선대해 준대로 자신의 가족들도 선대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정탐꾼들은 그녀의 제안대로 그 가족을 보호하기로 맹약하고, 무사히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 사실을 함께 보고합니다.

2. 여리고 전투에서의 전리품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합니까?(24)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진 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26) 이 명령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 전투가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ð  가나안 정복의 첫 전투인 여리고 정복은 철저하게 여호와의 전쟁으로 진행됩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떤 전리품도 취하지 말고, 모두 여호와의 집의 곳간에 두어야 했습니다. 여호와의 전쟁에서의 노획물에 대한 처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 누구도 단 하나의 전리품도 취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것을 하나님의 소유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에게 다시 사용되지 않고 완전히 무너지고, 그 터에 대한 소유마저 금지됩니다.
ð  전투에서의 모든 승리자는 전리품을 취하기 마련입니다. 전리품을 취하며 승리자는 자신의 힘과 영광을 자축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전쟁에서는 한 사람의 노예도 취할 수 없고, 단 한 점의 귀중품도 취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정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새겨두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만일 여느 전쟁처럼 전리품을 취하고 그 성을 활용하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는다면, 이스라엘은 여리고를 정복한 것은 자신들의 능력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교만에 빠지기 시작하고 자신들의 힘을 신뢰하기 시작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그들의 생명과 능력과 영광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해 이제까지 행하신 모든 일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고 세상을 복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도 가로막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 전쟁은 가나안 정복 전쟁 전체를 대표하여 가장 철저한 하나님의 전쟁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3. 철저하게 여호와의 전쟁으로 규정된 여리고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리고인은 기생 라합의 집안이었습니다. 그 집안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25) 신명기는 거듭 가나안 원주민들을 용납하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이 예외적인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7:1-4) 이 사실은 하나님의 전쟁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ð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이 철저하게 진멸되고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예외가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라합의 가족은 살아남았고, 여호수아서를 기록한 저자가 여호수아서를 기록하던 시대에도 그 가족은 당당한 이스라엘의 일원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쟁은 무차별적인 학살이 아니라, 그 땅의 악한 길에 더 이상 소망을 두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ð  모든 것이 진멸되는 성전, ‘헤렘에도 불구하고 여리고 성의 일원이었던 라합의 가족을 살려뒀다는 점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정복전쟁이 끝나고 각 지역을 점령한 각 지파들이 가나안 주민들을 몰아내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그들을 책망하셨고, 이 일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시험거리, 고통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2:1-15). 하지만 라합 가족을 살리는 일에 대해서는 그 어떤 책망의 논조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여리고 정복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 중 하나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ð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의 근간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확인해 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혈통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자손들을 모두 애굽에서 구원하셨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나오는 행렬에는 그들만이 아니라 허다한 잡족들이 함께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12:38; 11:4).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으며 언약을 맺을 때, 이스라엘과 함께 한 모든 족속들이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포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갈렙도 그나스 사람(32:12)이라고 소개되고 있는데, 15:19에 따르면 그나스도 이방 족속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많은 사건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자손이라는 혈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언약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가나안 사람들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들을 선대하는 라합과 그 가족은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는데 손색이 없습니다. 특히 그녀가 창녀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스라엘에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기브온 족속이 여호수아를 속여 화친을 맺은 사건(9:24)에서도 그들이 구제받게 되는 유사한 원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 정복 전쟁이 이스라엘에게도 주변 국가들에게도 하나의 기념비와 같은 사건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 성을 정복하게 하셨고, 그리고 모든 것을 진멸하게 하셨으며, 그 누구도 전리품을 취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 성이 재건되어서는 안 된다는 여호수아의 저주도 맥락을 함께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라합의 가족들이 이스라엘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저항하는 자들을 물리치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가치를 받아들이는 이들과 맺은 신실한 약속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본질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과 삶의 모습 속에도 하나님 나라 가치에 반하는 것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과 맞서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여리고와 같은 모습들을 말씀으로 훼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삶을 향하여

1.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무한 탐욕을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맘몬 중심의 사회입니다. 무한 소유가 칭송 받고 거대한 부를 소유한 자들이 왕 노릇하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ð  이 질문은 여리고 정복 전쟁에서의 원칙이었던 헤렘에 대한 적용입니다. 즉 전리품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면서 그 땅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하게 한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ð  오늘 우리 사회는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통해 성장해 갑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도, 그리스도인도, 자신의 노력으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얻는 이스라엘이 그런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자리에 머물러 있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숭배하는 자리로 튕겨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능성이 높은 수준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3:5). 그런 면에서 자신의 몫을 취하는 것이 매우 당연해 보이는 순간에 그 권리를 포기하거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한 매우 용감한 행동이 됩니다. ‘당연한 나의 권리를 부정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양보하고 섬길 수 있는 사례들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2. 우리 안에도 하나님나라 가치에 저항하는 여리고적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빗장을 걸어 잠그고 말씀에 저항하는 우리 안의 여리고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ð  여리고는 죄악이 극단이 이르게 된 가나안 문화의 대표주자입니다. 그런 문화는 하나님의 문화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속에도, 우리의 삶 속에도 하나님 나라 가치와 공존할 수 없는 탐욕과 폭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가나안, 이 두 모순적인 가치를 계속해서 함께 붙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공존은 불가능합니다. 여리고를 정복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드러나기 어렵습니다.

ð  이스라엘은 자신의 힘으로는 여리고를 정복할 수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식으로 공략할 때에만 이 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여리고적인 저항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나는 왜 내 마음의 여리고를 하나님과 함께 정복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하려 하고 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그리고 함께 대화하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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