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큐티 2015년 12월 6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12월 6일(주일) 소그룹성경나눔
큰
나무가 되려는 이유?
다니엘서 4장 19-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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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살펴보기
다니엘서 4장은 느부갓네살 왕이 제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보낸 회람 서신입니다. 그는 이 서신을 통해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세계의 주로 발견하게
된 신앙경험을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1-3절까지는 서신을 쓰게 된 동기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나옵니다. 4-9절까지는 바벨론의 술사들이 꿈을 해석하지 못해 다니엘을 부르는 내용이 있습니다. 10-18절에는 왕이 꾼 꿈의 내용이 나옵니다. 19-27절까지는
다니엘의 꿈 해석이 나옵니다. 그리고 28-36절은 그 꿈대로
느부갓네살이 폐위되었다가 7년 만에 복귀한 내용이 나옵니다. 37절은
이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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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1.
다니엘이 심히
번민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또 왕은 그 번민은 어떻게 해결해주었나요?(19)
직장 상사에게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구나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왕에게 불길한 꿈 해석을 들려주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만약 왕이 귀담아 듣지 않고 불쾌하게만 여긴다면 다니엘은 목숨을 부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다니엘은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였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꽤 마음이 열린 왕이었습니다. 꿈을 꾼 사람은 자기이므로 해석자가 번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줍니다. 이
말을 들은 후 다니엘은 그 꿈이 느부갓네살이 아닌 다른 왕에게 응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답합니다.
2.
꿈에 나오는
나무 이야기는 크게 현재에 관한 평가와 미래에 일어날 일로 나누어집니다. 나무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인가요?(20-22), 그리고 그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1) 첫째
평가
■ 묘사: 나무가
높이 자라 견고하여지고 하늘에 닿아 땅 끝에서도 보인다.
■ 해석: 나무는
왕을 상징합니다. 높이 자라 하늘에 닿는다는 것은 온 세계를 정복하여 세계가 그 밑에 복종할 만큼 위대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바벨론 제국이 대영제국처럼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을 말합니다.
(2) 둘째
평가
■ 묘사: 잎사귀는
아름답고 열매가 많아서 만민이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고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다.
■ 해석: 고대문헌에서
‘거대한 나무 비유’는 늘 제국에 대한 비유였습니다. 큰 나무가 서면 그 아래에 짐승들이 오고, 잎사귀가 무성하면 새들이
숨고, 열매가 달리면 짐승들이 와서 따 먹고 살 듯이 큰 제국이 세상을 먹여 살린다는 것입니다. 짐승 새 등은 바벨론 제국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나라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좋은 제국은 만민을 먹이는 좋은 나라가 되어 모두를 윤택하게 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을 비유하실 때 ‘겨자씨 한 알이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하셨습니다. 이 나무는 하나님나라를 의미하는 비유입니다(눅 13:19). 하나님나라는 이렇게 만민에게 복을 주는 복의 근원입니다. 이런 나라는 커질수록 좋습니다.
(3) 문제가
되는 부분
거대한 나무가 자라는 것 자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 나무를 통해 다른 이들이 혜택을 얻는 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무가 자라 하늘에 닿은 것입니다. 나무는 땅에서 자라야지 하늘에 닿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경계를 벗어나기까지 자라면 더 이상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가
하늘에 닿으려는 노력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처럼 되려는 것입니다. 이런
권력은 필히 자신의 영광을 위해 남들을 힘으로 짓누르고 빼앗는 권력이 됩니다. 그 높이를 지탱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작은 나무들의 권리를 박탈할 것입니다. 열매 맺어 세상을 이롭게 할 사명도 잊은 채 모든
것을 자기의 키만 키우는데 소진할 것입니다. 결국에는 열매도 없고, 무성한
잎도 없이, 큰 줄기만이 덩그러니 남아 죽어갈 것입니다. 나무가
컸던 만큼 그 안에 있던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닿은 나무는 결국 바벨탑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됩니다.
3.
나무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미래에 하실 일은 무엇이며 그것이 무슨 뜻일까요?(22-26)
■ 묘사(1):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내려와서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말할 것이다
■ 해석(1): 나무를
베라는 명령은 폐위시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계속하여 느부갓네살의 권력을 밀착 감시하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권력의 행위를 세밀하게 평가하고 계십니다. 평가결과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순찰자를 땅으로 파송하여 나무를 베듯 권력을 베어 버리십니다.
■ 묘사(2): 그루터기는
남겨두어서 하늘 이슬 맞으며 들짐승과 들풀과 함께 일곱 때를 지내게 된다.
■ 해석(2): 그루터기가
남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느부갓네살을 향한 기대를 품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망했으나 그루터기를 남겨 새로운 하나님나라를 창조해가셨듯이 느부갓네살도 그리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칠년이란 정화기간을 거친 뒤 일어납니다. 권좌에서 쫓겨나 칠년 동안 들판에서 유리하며 자신을 성찰하다가
그 후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4.
꿈의 예측을
피하기 위해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알려준 해법은 무엇인가요?(27) 그가 얼마 동안의 유예기간을
가지게 되나요?(29)
다니엘은 그 꿈이 문자적으로 임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지금의 회개를 통해 그 시나리오가 폐기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왕에게 대안을 제시하며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의 대안은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는
것입니다. 즉, 말씀대로 실천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폐기되게 하라고 대책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런 다니엘의 조언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열 두 달이란 귀한 시간을 헛되어 보내었습니다. 그는 교만을
지속하면서 바벨론 제국이 자기 힘과 권세로 만들어졌다고 자화자찬 하였습니다. 이 열두 달 후의 자화자찬이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피할 수 있는 파국을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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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향하여
1.
느부갓네살은
큰 나무가 되려 했습니다. 우리 또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큰 나무는 무엇일까요? 또 우리는 왜 큰 나무가 되려 할까요? 또 우리 사회가 바라는 그런
큰 나무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함께 이야기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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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큰 나무도 작은 나무도 있습니다. 성경의
평등은 기본적인 차이조차 완벽하게 없애는 그런 기계적인 평등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다양하게 창조하시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달란트 비유에서 분명 차등을 가지고 분배하셨습니다. 차이는 분명 하나님의 질서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차이가 차별이 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그런 불평등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은 하나님이 용인하실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버렸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학력에 따른 차별, 빈부에 따른 차별이 심화되어 점점 사회는 내적으로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 예수님 닮은 이들이 필요합니다. 악마적인 차별을 없애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차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동일하게 대접하는 세상이 그런 이들에게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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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더 큰 나무가 되려 합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 이유입니다. 왜 큰
나무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요? 성경적인 큰 나무는 세상을 먹여 살리는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큰 나무가 된 개인과 공동체는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많은 열매를 맺어 새와 들짐승들에게 나누어주고, 무성한 잎으로 비와
원수를 피해 도망치는 새들을 품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나무만이 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 나무를 찾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큰 나무가 되는
과정에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큰 나무들이 자신들의 힘을 동원해 세상의 모든
것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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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삼만 불 시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더 돈이 많고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제국들의 뒤를 따라가
보려는 것일까요?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부와 힘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실까요?
2.
사람들은 종종
최선을 버리고 차선을 택합니다. 느부갓네살이 그랬듯 더 좋은 길이 있는데 덜 좋은 길을 택하여 고생하고
돌아옵니다. 각자의 경험을 나누어 보세요. 또 우리의 어리석은
선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세요.
ð 예언서에는
수 없이 많은 멸망의 예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의 초점은 그 멸망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멸망 예측을 바탕으로 지금 회개하여 미래가 틀리게 하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틀리게 되기를 바라고 주시는 말씀인 셈입니다. 지금 회개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게 되기를 간곡히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언은 ‘닫힌 미래’가 아니라 ‘열린 미래’를 지향합니다. 설사
하나님 자신의 말이 틀렸다고 조롱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통해 미래가 바뀌기를 더 원하십니다.
ð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 듣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심드렁하다가 결국 예언대로
심판을 초래하게 됩니다. 또 말씀을 들으면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반항하다가 심판을 더 빨리 앞당기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심판의 실행 유무는 예언자체보다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반응에 달려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열 두 달이라는 아까운 유예기간을 허송해버립니다. 만약
다니엘의 조언대로 회개하였다면 느부갓네살은 폐위되지 않고도 그 나라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그가 행할
회개는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실천적 회개가 미래를 바꿉니다.
ð 그러므로
만약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불길한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조언대로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다시 올바로 서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기꺼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폐기처분하실 것입니다. 늘 실패하고 돌이키는 차선의 시나리오보다 선제적으로
회개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ð 혹 그러지
못했나요? 그렇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