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큐티 2016년 10월 9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10월 9일 (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다시금 언약관계의 사랑 속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본문-호세아 2:14-23
흐름 살펴보기
하나님께서는 그와 결혼언약의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의 배교(음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언약을 기억하시며 다시금 이스라엘을
이 언약관계 속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달래듯 자상하고 섬세하며 깊은
이해심으로 다가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언약을 맺은 지점인 거친 들, 즉 광야로 이스라엘을 안내하십니다. 그들이 빼앗긴, 삶의 터전(땅)으로 상징되는
포도원을 돌려주고 음행이 낳은 비극과 고통의 자리(아골 골짜기)를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무대(소망의 문)로 만드십니다. 옛 애인 바알이 주는 거짓된 행복이 아닌, 이스라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진정한 남편이신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복락과 기쁨을 맛보게 하실 것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연합이
다시금 세워질 것입니다.
성경 속으로
1. 본문의 단락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14절). 이 단어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은 어떠합니까? 이 두 가지 상반된 분위기가 “그러므로”라는 표현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앞선 단락(2:2-13)은 영적 음행에 빠져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고발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것들을 바알에게 바치며 바알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그들을 벌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러므로’에 이어지는 단락(2:14-20)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타이르고
위로하며 그들과의 관계의 완전한 회복을 이루시리라는 뜻을 들려줍니다.
징벌과 위로라는 너무도 대조적인 장면이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무척 의미심장합니다. 우리는 징벌을 내리시는 하나님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마치 다른 분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이 두 단락이 ‘그러므로’라는
표현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징벌과 위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다시말해, 타락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바알이 헛된 우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뒤에 가능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를 철저하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이 관계의 회복은 자연 만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칩니까? (18절)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하게 회복할
때, 우주에는 크게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모든 움직이는 생물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전쟁이 완전하게 사라지고 평화가
임하는 일입니다.
창세기에는 생물들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만 언약을 맺으셨고, 인간은
그 언약 관계를 따라 생물들을 다스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연을
다스리면 자연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 하나님께서는 생물들과도 직접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벽한 완성에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고난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직면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면, 이것은 그저 그들이 타락 전의 출발선으로 되돌아오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락 전의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며 도달하게 되어 있던 바로 그 목적지로 직행하게 됩니다.
3. 이스라엘과의 언약관계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성품들은 어떠합니까? 이 성품들은 ‘언약’이라는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19, 20절)
=> 19, 20절은 세 번이나 반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결혼관계를 맺으신다고 강조합니다. 종종 결혼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결혼은 인간이 맺는
모든 언약 중에서 가장 엄중하고도 영원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 언약관계는 하나님의 공의, 정의, 은총, 긍휼히
여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회복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 안에서 공의와 정의와 은총, 그리고 긍휼히 여기심을 항상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우리는 우리가 이뤄놓은 성과, 열매들에 집중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죄인이며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선포하시는 복음은 지금까지
달려온 내 삶 속에서 만들어진 모든 선한 것, 아름다운 것들의 진정한 주인공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동시에 내가 한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내 생각과 행동으로 그분의 뜻을 저버린 잘못된 행동과 결정이었음을
사실로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근원적 인식 속에서만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긍휼과 회복에
역사를 바라볼 수 있고 그것을 온전히 소망할 수 있습니다.
삶을 향하여
1.
나를 타이르고 위로하며, 어르며 달래시면서 그분과의
언약관계 속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오늘 나의 삶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하나님의 섬세한 초청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2.
오늘 나의 삶의 “아골 골짜기”는 어디이며, 그곳을 소망의 문으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내 삶에 적용되고 있습니까? 이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 속에 비춰볼 때 내 삶에서 제거되어야
할 나의 “바알들”은 무엇입니까?
3.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영원한 언약, 즉 ‘내가 하나님의 신부로 영원히 살게 된다’는 약속은 내 삶과 내가 속한
신앙공동체와 교회 그리고 내 주변의 이웃과 사회, 나라와 민족 앞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집니까? 결혼언약이 파기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언약파트너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이 땅을
향해 보여줘야 할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