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30일 소그룹 성경 나눔 문제 해설

1130(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기록, 기억, 그리고 행함

신명기 27:1-10

l  흐름 살펴보기

신명기에서 지금까지 모세는 혼자 말씀을 선포해왔습니다. 이제 모세는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서서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강을 건너면 하나님과 백성들의 언약을 갱신하는 예식을 행하라고 명합니다. 그 첫 작업은 먼저 율법을 기록한 큰 돌을 에발산에 세우고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 나누어 서서, 언약에 따르는 축복과 저주를 선언하고 백성들이 화답하는 예식을 거행할 것입니다.

l  말씀 속으로

1.    요단 강을 건넌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돌을 가지고 기념비를 세울 것입니다. 그 돌에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게 되나요?(2,3,4,8) 이 기념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이 작업은 왜 필요했을까요?

ð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큰 돌들을 석회를 발라 준비해야 합니다. 흰 색깔의 석회를 바른 이유는 그곳에 글을 쓰기 위해서입니다. 이 돌들은 요단강을 건넌 직후 에발산에 세울 것인데(4), 거기에는 율법의 모든 말씀들이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되어야 합니다(3,8). (함무라비 법전의 경우를 생각하면, 12~26장의 모든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함무라비 법전이 기록된 석비 두 개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3).
ð  에발산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면 북쪽으로 50~60km나 더 올라가야 하는 세겜 지역의 산입니다. 그 산은 해발 940미터에 달하여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헤르몬 산, 동쪽으로는 요단강, 서쪽으로는 지중해, 남쪽으로는 예루살렘 등, 하나님께서 주신 땅의 거의 모든 경계가 눈에 들어옵니다.
ð  율법에 대한 강론은 신명기 121절에서 시작하여 2619절에서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스라엘의 응답입니다. 이 비석은 이스라엘의 여정이 모두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스라엘은 아직까지 가나안 정복 전쟁을 남겨두고 있다는 면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갱신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이전에는 이스라엘과 모세, 그리고 하나님이 언약의 구성원이었다면 이제 갱신되는 언약에서는 이스라엘, 여호수아, 하나님, 그리고 가나안 땅이 그 구성원이 될 것입니다.

2.    돌 기념비와 함께 에발 산에는 또 무엇이 만들어지나요? 거기서 드려지는 제사는 무엇입니까? 두 제사는 각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ð  율법이 새겨진 기념비가 에발산에 세워질 때, 이스라엘은 그곳에 돌 제단을 쌓아야 했습니다(5). 특히 그 돌제단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아야 했고,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번제와 화복제를 드리고 즐거워해야 했습니다(6, 7). 제단을 쌓을 때 쇠 연장으로 다듬지 말라는 명령은 출20:25에도 이미 언급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들이 있지만 그 중에 무엇이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ð  번제는 짐승의 몸 전체를 태워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그 일부만 불에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나누어 먹는 제사입니다. 전자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제사이고, 후자는 하나님 안에서 형성된 수평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제사입니다. 번제와 화목제, 이 두 제사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첫 번째 언약을 체결하고 하나님께 드린 제사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이 두 제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언약적 관계를 경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3.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이 기념비를 세우고, 율법을 기록하며,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면서 드렸던 제사( 24:5)를 드리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9, 10)

ð  가나안에 정착하는 이스라엘은 갑자기 등장한 민족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그 땅을 얻기까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조상이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율법이 있었으며, 그 관계성을 확인하는 제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절차들은 이스라엘이 가진 역사적 정체성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드러냅니다.

이집트에서의 종살이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세대는 이미 거의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나아가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경험한 세대도 머지않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제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살면서 하나님과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의 명령과 규례들을 지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아는 것, 그것을 세대를 이어 전수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제입니다.

l  삶을 향하여

1.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기 위한 기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를 잘 알지 못하면,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규례를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는 얼마나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고 있습니까?
ð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중세 교회는 신앙과 말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로 미사는 진행되었고, 백성들의 신앙은 철저하게 미신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의 교회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낼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오늘날에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보여주는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어떤 나라로 이끄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교회에서 몇 마디 주워들은 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알려고 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현상에만 집착하려는 모습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워가시는 방식과 너무도 거리가 멉니다. 물론 구약 시대와 오늘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되어 신약 성경으로 우리에게 들려 있습니다. 우리의 주관적인 성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해서 끊임없이 말씀을 읽고 토론하고 실천하며 반성하는 일이 없으면 교회는 변질되기 쉽습니다. 우리의 모임은 성경의 위치를 어느 정도로 보고 있습니까?

2.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대계명을 실천하는 삶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함께 기쁨을 나누는 삶, 이것이 바로 번제와 화목제로 예시되었던 예배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는 이 일을 얼마나 잘 행하고 있습니까?

ð  번제와 화목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내 삶의 모든 영역의 주권을 타협 없이 내어드릴 때, 우리는 진정한 번제를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직장생활과 학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 하루를 지낼 때에는 잠깐의 말씀 묵상도, 잠깐의 기도도 헛된 시간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번제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헌금이 얼마나 모이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영광에만 집중할 때, 우리는 번제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갈등이 있는 관계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서를 구하거나 용서를 한다면, 우리는 화목제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그를 돕는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화목제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실천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나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진 삶이나 다름 없을 것입니다.

3.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 공동체는 그 공동체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어떤 기억을 공유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어떻게 전수하고 있습니까?

ð  기업은 이윤 창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교육기관은 피교육자의 성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동호회는 현재의 즐거움을 통해 그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신앙 공동체는 현재와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험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신앙 공동체는 사람의 비전이나 성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빚어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떻게 빚어 오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은 영적 정체성을 공유하는데 필수적입니다.

ð  공동체의 기억은 네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가까운 기억입니다. 우리 단체의 설립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그보다는 조금 더 넓은 기억으로서 한국 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는 세계 교회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될 때, 우리 공동체의 오늘은 단순히 한 두 사건으로 평가될 수 없는 의미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차원에서의 교회사 공부는 신앙 공동체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세대간 교제는 이런 신앙 정체성의 전수에 있어서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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