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23일 소그룹 나눔 문제 해설

1123(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살아갈 만한 세상

신명기 24:17-22

l  흐름 살펴보기
신명기의 율법은 곳곳에서 사회적 관계, 질서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보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본문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와 그들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이집트 사회의 가장 약하고 낮은 종이었던 것과, 하나님께서 거기서 그들을 건져내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이 규정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l  말씀 속으로

1.     나그네, 고아와 과부로 예시되는 사회-경제적 약자가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점은 무엇입니까?(17) 24:6, 10-13절의 규정도 참고하여 볼 때 이 규정의 기본적인 정신은 무엇입니까?

ð  은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들어와 사는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그런 외국인이라면 그는 이스라엘의 문화에 대한 적응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일 가능성이 높고, 법령에 대한 지식도 부족할 것입니다. 또한 그를 법정에서 옹호해 줄 사람도 충분치 않을 것입니다. ‘고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성숙한 판단을 내릴만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변호할 능력이 부족하리라는 것도 예상 가능합니다. 법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부족한 객이나 고아가 법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 절차가 정당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법정적 정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정의가 그 정도에 머무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법적인 약자인 그들을 배려하는 원리가 이스라엘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ð  과부는 홀로 생활하거나 남편 없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여인입니다. 전당을 잡힌다는 것은 그 여인이 어려운 경제적 형편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빌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빌려준 사람이 그것을 돌려받을 때까지 담보물을 받아두는 것은 당연한 법적인 권리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의 경우에는 담보물로 맡길 수 있는 것이 이불로도 쓰이는 겉옷 하나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럴 경우, 이스라엘의 율법은 그 겉옷을 담보물로 맡아두는 것을 금지합니다.
ð  24:6은 한 가정이 곡식을 빻아 빵을 만들어 먹을 때 사용해야 하는 맷돌은 저당 물품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24:10-13은 무엇을 저당물로 삼을 것인지를 채권자가 아닌 채무자가 결정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저당물이 겉옷일 경우, 채무자가 추위에 밤을 지새우는 일이 없도록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명령합니다.
ð  이러한 규정들은 채권자의 경제적 권리보다 채무자의 인권, 생활권을 우선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생존권, 생활권보다 그것을 우선시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삶의 풍요는 개인의 몫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이자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은혜 안에 있음을 기억한다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은혜롭게 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2.     이스라엘은 추수할 때 반드시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방식을 취하여야 합니다. 모세가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세 가지 정황은 무엇입니까?(19, 20, 21) 이렇게 하는 것은 약자들에게 적선을 하는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

ð  1) 밭에서 추수하다가 곡식 한 단을 잊고 온 경우에는 그것을 나그네, 고아, 과부를 위해 남겨두어야 합니다.(19)
2) 감람나무(올리브 나무)를 떤 후에는 떨어지지 않은 열매들은 없는지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들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20)
3) 포도를 딴 후에도 미처 따지 못한 것이 눈에 띈다면 그것들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그냥 두어야 합니다.(21)
ð  추수는 온 이스라엘이 기뻐하는 때입니다. 그들의 모든 노동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복 주심 안에서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보람찬 날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자신의 밭에 열린 결실들을 하나도 빠뜨림 없이 자신의 것이 되도록 손을 움켜쥐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땅이 있어서 풍성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지만, 기쁨의 통로가 되는 땅이 없는 객과 고아와 과부는 그 기쁨의 잔치에서 소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땅을 가진 자들에게는 땅이 기업이지만 객, 고아, 과부에게는 땅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기업이 되어야 했습니다. 특히,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살아가야 하는 그들이었지만 추수 때가 되면 자신들도 떳떳하게 추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당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몫으로 약속하신 땅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이스라엘이 약자를 보호하고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ð  이스라엘의 율법은 이처럼 사회,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라는 규정들을 선언하면서 그 규정들의 근거를 반복해서 언급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과거에 애굽에서 종 되었던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사실입니다(18, 22).
ð  결코 스스로는 그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그들은 애굽에서 경험했습니다. 그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그들 내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 때문이었습니다. 약자가 도움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 스스로는 자신을 보호할 가능성이 차단되었거나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존귀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참함과 영광을 모두 경험한 이스라엘이 약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닮기를 원하셨습니다.
ð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죄의 종 된 상태에서 결코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예수님을 통하여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의 종 된 상태를 영적인 영역에만 한정 지어서는 안됩니다. 죄는 우리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총체적으로 속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속박에서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죄의 질서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도움의 손을 내밀 필요가 있습니다. 그 도움은 결코 영적인 영역에만 한정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죄의 질서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도 이 땅의 약자들에 대한 마땅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한 사회가 얼마나 공의롭고 살 만한 사회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보다도 그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이 어느 정도의 보호를 받고 어떤 기본권을 누리느냐일 것입니다. 억울한 경우를 당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자기의 권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내지 못할 사람들,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할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추어진 사회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을 마련해 놓고 있는 사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사회의 모습입니다.

l  삶을 향하여

1.     나와 우리 공동체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대우하고 있습니까?

ð  오늘날과 같은 고도 경쟁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의지가 약했거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른 현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 땅이 정말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고, 노력에 따라 정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완벽한 질서를 가진 곳이라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정의는 완전히 실현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이 여전히 죄의 권세가 가득한 곳임을 압니다.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타락한 세상은 예기치 못한 약자들을 낳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의 질서를 성경적으로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은 그런 면에서 사회 경제적 약자들을 비난하거나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깨어진 이 땅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입니다.

2.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이 세상의 약자들을 보호하고 섬기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제하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가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해야 할 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ð  약자를 보호하고 섬기는 것은 당장의 필요만을 채우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시혜자수혜자의 관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낙오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정부가 적절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확충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정치적인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나아가 교회가 그런 역할을 과도기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기도하며 논의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노동의 결실을 모두 나의 것으로 확보하려고 집착하는 태도를 벗어나라는 본문의 말씀대로, 내 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국가가 세금을 잘 사용하도록 기도하며 감시하는 것도 마땅한 도리입니다.

3.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과거를 기억해야 하듯이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 되었던 때를 잊어버리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와 안정을 당연시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들은 원래 자신들의 것이었고, 자신들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ð  우리가 죄인이었고 그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가 선 자리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대상들입니다. 내가 다른 죄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구원에 대한 성경적인 고백으로부터 이탈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그 어떤 죄인들보다 나을 것 없는 내가 은혜를 입었다면, 나는 약자들을 섬길 때 철저하게 은혜 입은 자로서 그들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결코 드러내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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