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큐티 2016년 9월 4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9월4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근거
고후 1:15-2:4
l 흐름 살펴보기
3차 선교 여행 중 바울은 에베소에 2년 반을 머무르며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차 선교 여행 중에 세운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권면하는 편지(고린도서신A, 고전5:9)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인편에 전해지는 소식은 그들의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두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보내며 마게도냐를 들렀다가
겨울을 거기에서 보내겠다는 계획을 전합니다(고전16:1-7). 하지만
바울은 계획을 변경하여, 마게도냐에 가는 길과 오는 길, 두
번에 걸쳐 고린도를 방문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에 들렀을 때 만난 것은 교인들의 강력한
적대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돌아오는 길에도 고린도에 들르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곧바로 에베소로 돌아갔습니다. 교인들을 선동하던 이들은 이 일을 두고 바울의 사도성을 더욱 강력하게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l 성경 속으로
1. 바울은 자신의 계획이 변경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17-22) 당신은 누군가가 자신의 번복 이유를 이런 식으로 해명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바울은 왜 이렇게 무리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일까요?
? 바울은 자신이
두 번에 걸쳐 계획을 번복한 이유가 자신의 ‘경홀함’, 즉
자신의 이해관계나 편리와 같은 가벼운 동기를 따른 것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태도가 늘 철저한 순종이었듯이 자신도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도로서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그런 번복을 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런 주장은
사실 무척 독단적으로 보입니다. 특히 당시의 바울과 같이 사도적 자격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지혜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등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바울이 이런
위험성을 모를 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번복에 대한 이유를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하여 해명합니다. 물론 바울은 이런 이야기 대신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구체적인 정황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이어지는 단락에서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했다면 당장은 사람들의 불만을 좀 더 쉽게 잠재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는 하나님보다는 상황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울은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빠르게 해소하는 지름길 보다는, 조금은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의 사도적 본성을 강력하게 제시하는 편을 선택한 것입니다.
2. 바울은 이어 그 상황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황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직면한 현실은 무엇이었습니까? (2:1, “고린도후서를 묵상하기
전에” 참조)
? 바울은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었다고 말한 뒤에,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구체적인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바로
‘근심 중에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장 1절의 ‘다시는’이라는 표현은 어떤 후회 섞인 강력한 결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근심
중의 방문’이 이미 한차례 있었기에 그것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마케도냐로 가는 길에서의 방문이 그에게 큰 근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 ‘근심’은
고린도후서 전체 내용으로 볼 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동조하며
그를 배척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3. 바울은 자신의 결정과 하나님의 관계를 선언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구체적인 상황을 이어서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바울 사역의 어떤 면을 볼 수 있습니까?
?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곤 합니다. 어떤 행동이나 결정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 누구도 그 결정에 개입하거나 설명을 요구할 수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구체적인 해명을 요구한다면 그는 영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일쑤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상황 자체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는 것도 영적인 태도는 아닙니다. 판단의
근본을 이루는 가치 기준이 하나님과 무관한 경우가 우리는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이 두 가지가 결코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직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이라는 말을 빌미로 현실의 구체성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영적인 현실과 물리적 현실은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결정을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순종’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고, 동일한 결정을 ‘결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4. 바울이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자신의 계획을 변경하였을 때, 판단의 원리로 삼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1:24) 이 원리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바울이 계획을
변경하여 에베소로 곧바로 돌아가는 것이 상황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었던 이유는 그 판단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가지 않은 이유가 ‘그들을 아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23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강제적으로 통제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기 위해 계획을 변경한 것입니다.
? 바울의 이
짧은 말에는 교회와 성도에 대한 복음적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믿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적 문제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재차 방문하여 강요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역할이 ‘믿음을 만들어내는
자’가 아니라 ‘기쁨을 돕는 자’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미 믿음 위에 서 있다는
신념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만약 믿음이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기쁨’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은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대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의 하나는 단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입니다. 종종 사람들은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으로 그 답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관적 상상이라는 틀 안에 가둬버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상상력의 한계 안에서 내린 판단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독단적으로 판단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보는 메시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기초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간과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태도와 그 기준의 중요한 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l 삶을 향하여
1. 당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까? 바울의 모습으로부터 배우고 기억하며 따라야 하는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2. 바울처럼 일상 속에서 당당히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고 따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깊은 이해일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들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제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