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 돌이키는 방법

신명기 31:14-23

l  흐름 살펴보기

모세는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율법을 모두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율법 안에서 살지 않으면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지를 축복과 저주의 형식으로 그들의 마음에 새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낯선 환경과 위기들 앞에서도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할 것과 그 믿음을 계승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온 백성이 율법을 배워야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렇게 우상숭배와 죄를 막아내기 위한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들을 마련했으니,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l  말씀 속으로

1.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그 언약을 버리고 이방 신을 따라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6, 20)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그토록 거듭 당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길을 따르게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21하반절) 이것으로 볼 때 인간의 죄의 깊이는 어떠합니까?

ð  이제까지는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큰 불행이자 좌절처럼 느껴져 왔습니다. 그러나 16절에 따르면, 오히려 이 사실은 모세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한 사람으로서 명예롭게 조상들과 함께 누울 것이지만,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그런 명예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어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20, 21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언약을 어기는 이유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그들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땅을 얻고 배부르고 살찌면 우상숭배로 돌아서리라는 사실입니다.
ð  이 말씀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의 타락과 변절을 아시고도 그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모든 인류 중에서 가장 어리석고 강퍅한 백성을 일부러 불러내셔서 스스로 실패와 수치를 자초하신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그의 후손이 이렇게 큰 민족을 이루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나마 다른 어떤 민족들보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필연적인 종교적 실패는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애초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ð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각을 아신다는 것은, 운명론적으로 결정된 인간의 생각을 미리 내다보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을 너무도 잘 아시기에, 그 생각이 필연적으로 맺을 결과를 아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인간의 본성이란 이것입니다. 노예된 때와 광야 유랑의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을 맹세하지만, 땅을 얻고 풍요를 누리게 될 때에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 시작할 것입니다. 인간은 생존의 욕구가 채워지면 그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더 많은 물질과 힘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힙니다. ‘생존의 욕구상승의 욕구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때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 대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바울이 간파하고 있는 인간 본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1-23) 인간은 이렇게 철저한 겸손과 믿음을 전제로 하는 여호와 신앙을 순전하게 유지하기에는 너무도 탐욕적이고 이기적입니다.

2.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그들을 외면하시고, 그들은 재앙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요?(17)

ð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겨 보이지 않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특별한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수기 6:24-26절의제사장의 축도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라고 하면서 거듭 하나님의 얼굴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호와의 얼굴을 보는 것과 복된 삶의 관계를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ð  죄와 재앙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성도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재앙을 내리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에 그런 말씀들이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지, 하나님이 고통의 조성자나 창조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1:24),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 인간의 폭력과 고통은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의 결과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길을 거부한 자에게 그 길의 필연적인 결과를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사사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거듭된 실패와 고난도 우리는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가나안을 정복하고 다스릴 능력이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의 승리는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버릴 때 하나님께서도 은혜의 손길을 거두십니다. 그러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재앙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ð  그때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손이 떠났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이스라엘은 너무도 특별한 출발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에서 경험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처절한 패배와 고통을 경험할 때 자신들의 과거와 너무도 대조적인 현실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여전히 함께 하시다면 이런 고통을 경험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떠나 악을 좇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고, 그 결과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는 이제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순간에 그들을 일깨울 무언가를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19, 21상반절)

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를 통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변질되어 우상숭배로 빠져드는 계기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징계 앞에서 돌이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며 하나님을 불평할 뿐입니다.
이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제 3의 길을 준비하십니다. 그것은 쓰라린 실패의 날에 이스라엘이 진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증거를 그들의 마음 속에 심어두는 것입니다. 이 증거는 바로 한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노래를 쓰게 하셔서, 이스라엘이 대대로 그 노래를 부르게 하셨습니다. 노래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기억하도록 하기에 매우 좋은 도구입니다. 32장에 이어지는 이 노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일들과 이스라엘의 배신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의 깊이를 아시기에, 이 노래는 이스라엘의 배신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과거 시제로 이야기합니다. 이 노래를 대대로 가르치며 부를 때 이스라엘은 별 생각 없이 부를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이 진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이 노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분명하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버릴 때 어떤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인지도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 길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우리 죄의 깊이는 훨씬 더 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버렸을 때, 때가 되면 터져 나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 무언가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증거의 노래입니다. 이것을 외우고 있는 이들은 비참한 자리에 이르렀을 때, 모든 것을 깨닫고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l  삶을 향하여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도 돌이킬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당신을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돌이키게 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ð  신명기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길게 율법을 설명하게 하셨으나, 이미 이스라엘의 배신을 예견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배신당할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스스로 걸어 내려가는 죄와 비참함의 자리를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자리로 내려갔을 때에도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고 돌이키기를 원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이런 경험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깊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미 경험하셨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ð  혹시 죄로 인해 고난에 빠져들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 우리를 위한 증거의 노래인 십자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오. 그 십자가에는 우리 죄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한 증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2.     성경 암송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매우 유익합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우는 암송구절들은 대부분 축복과 격려의 말씀들입니다. 복음의 핵심적인 진리들을 담고 있는 구절,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에 관한 구절들은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이끄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 소그룹이 어떤 구절들을 암송하는 것이 좋을지 그 목록을 정해 봅시다. 그리고 이것들을 암송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봅시다.


ð  이를 위해 레위기 율법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레위기 19장의 말씀들을 암송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십계명이 기록된 출애굽기 201~17절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신명기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하나님의 자비와 공평과 정의를 많이 만났을 것입니다. 어떤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좋을지 찾아서 결정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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