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큐티 2015년 6월7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6월 7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하나님의 인도하심
사도행전 16:6-15
l 흐름 살펴보기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하게 된 계기는 성령님의 분명한 지시 때문이었습니다(13:2). 동행하던 마가요한의 갑작스러운 탈퇴와 유대인들의 격렬한 핍박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선교 사역은 하나님의 능력과 아름다운 열매로 가득했습니다. 선교
여행을 끝나고 돌아왔을 때 안디옥 교회가 할례와 구원의 관계에 대한 논쟁으로 교회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모습을 본 바울은 자신들이 세운 교회를
다시 한 번 돌아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마가 요한을 데려가는 문제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바울과 바나바는, 결국 각각 실라와 마가요한 따로 대동하고 바울은 1차 여행의 역방향, 바나바는 정방향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어쩔 수 없는 의견 차이로 팀은 나뉘었지만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를 거쳐 여러 교회들을 더욱 든든히 세워갑니다.
l 성경 속으로
1. 성경은 그 구체적인 상황을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성령께서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디로 발걸음을 옮깁니까?(6) 이 경로를 큐티책 앞쪽에 있는 지도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ð “하나님 나라 큐티 5,6월호” 18페이지의 ‘바울의
1-3차 전도 여행’ 지도에서 2차 여행의 경로를 확인해 보면, 바울 일행은 이고니온에서 브루기아
갈라디아 지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들이 더베, 루스드라
지역에서 사역하던 중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6:1-6).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을 때 그들이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두 가지로 보입니다.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1차 선교지의 정방향으로 출발한 바나바 일행과 사역 지역이 겹치지 않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동쪽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루스드라와 더베를 다시 방문할 필요가 없고
그보다 더 동쪽으로 나아간 지역은 이미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청빙을 받기 전에 다소를 중심으로 하여 복음을 전한 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시아에서 사역하지 못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금지’를 북쪽으로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여 출발합니다.
2. 무시아 앞에 이른 바울은 어디로 가려고 합니까? 그 장소들을 지도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그런데 이 때 예수의 영, 성령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7) 그들의 계획이 계속 좌절될 때
선교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ð 바울 일행의 경로는 소아시아 지역의 고도로 문명화된 지역인 비두니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바울은 그곳의 유대인 자치구역들을 새로운 선교 거점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큐티 교재에 실린 지도는 비두니아의 위치가 모호하게 나와 있습니다. 비두니아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래 지도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ð 바울 일행이 비두니아로
향하고 있을 때 또다시 성령께서 그들을 막으십니다. ‘예수의 영’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6절에서는 ‘성령’, 7절에서는 ‘예수의
영’이라는 다른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아마도 두 번째의
경우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좀 더 두드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ð 이렇게 계속해서 성령께서
그들의 뜻을 막으시면서도 구체적인 방향을 드러내지 않으실 때, 바울 일행은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3. 계속된 좌절을 경험한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 일단 머무릅니다. 그날 밤 바울이 경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9) 이때 바울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ð 성령님의 막으심이 반복되었을
때, 바울은 스스로 계획하고 행동하기를 멈춥니다. 그들로서는
마지막으로 남은 방향인 드로아-소아시아의 끝-로 내려가 머무른
것입니다. 소아시아만을 자신의 선교지로 생각하던 바울로서는 벼랑 끝으로 몰린 셈입니다.
ð 드로아에서 머무르던
밤, 하나님께서는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9). 유럽을
아직 선교지로 생각하지 않고 있던 바울로서는 충격적인 경험이었을 것이며, 이제서야 드러난 성령의 뜻
앞에서 자신들의 선교 사역이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4. 마게도냐 사람의 요청을 환상으로 본 바울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그들이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들로 미루어볼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하는 과정은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ð 10절은 매우 간략하게
상황을 스케치하고 있지만 선교팀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누가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사람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바울 혼자 깨닫고 결정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부르심은 바울 개인이 아니라 바울과 실라와 누가로 이루어진 선교 공동체를 향한 것이었습니다(“우리를 부르신 줄로”).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한 것도 바울 개인이
아니라 그들 공동체였습니다(“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이
사실로 볼 때,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본 바울은 아침이 되자마자 동역자들에게 그 환상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고 선교팀은 그 환상이 바로 계속된 성령님의 금지의 이유였음을 함께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 일행이 마케도니아로 가게 된 과정은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①
선교의 뜻을 품음
②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좌절이 계속됨
③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며 현실적인 선택들을
내림(북쪽 지역으로의 이동, 드로아로의 이동 등)
④
성령께서 바울에게 초자연적인 체험으로 방향을 제시하심
⑤
공동체가 바울의 경험의 의미를 함께 분별함
⑥
공동체 전체를 향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받아 들이고 순종함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일수록 영적인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의 1차 파송을 비롯하여 사도행전의 많은 경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개인이 독단적으로 분별하여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공동체가 함께 경험하고
함께 분별합니다. 본문의 경우에는 저항할 수 없는 환경적인 요인, 그리고
초자연적인 체험, 거기에 더하여 공동체가 함께 분별하여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l 삶을 향하여
1. 당신은 당신이 처하게 된 상황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
상황을 놓고 공동체와 함께 뜻을 구해본 적이 있습니까?
ð 우리는 무엇인가가 좌절될
때, 그 좌절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는 정당한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 좌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보내시는지를 구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지속적인 인도하심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적인 선택과 절차를 자연스레 꺼내 들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여깁니다.
ð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분명한 방향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영적 공동체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함께 분별하며 공동체가 함께 반응해야 한다고는 거의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저 나의
개인적인 번영과 안전을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점점
드물어지는 것 같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2. 사도행전은 개인의 영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공동체의 영성임을
보여줍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성령 충만한 곳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ð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안타까운 현실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신앙을 개인의 유익이라는 차원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개인 신앙을 키워주는 곳’으로만 생각할 때 우리는 결코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족이고 진정한 한 몸이라는 고백과 소망이 없으면
우리는 이 땅에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를 경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