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큐티 2017년 1월 15일 소그룹 성경나눔 해설
1월 15일 소그룹 성경 나눔
불러내신 분의 침묵 앞에서
출5:15-6:1l 흐름 살펴보기
학대당하고 죽임당하던 히브리인 아기들 중에서 모세는 공주의 양자로서 이집트 왕궁에서 생모의 양육을 받으며 당당히
자라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모세와 어머니는 이 일의 의미를 하나님 안에서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장성하자마자 동족들의 보호자가 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 인도 히브리 인도 아니었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치기로 40년을 지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해방의 소명을 주십니다. 이미 실패한 트라우마가 있는 모세는 끝까지 고사하려 했지만, 하나님의
의지가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집트 왕을 찾아가 그들을 내보내 달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히브리 인들의 게으름을 탓하며 작업량을 몇 배로 늘리는 결정을 내려버립니다.
l 성경 속으로
1.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반장이 바로에게 항의한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생각하기에 바로의 요구는 왜 부당합니까? (15,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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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작업반장들’은 이집트로부터 동족 이스라엘 노예들을 관리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이스라엘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를 찾아가 두 가지를 항의합니다. 첫 번째는 벽돌을 만드는
재료인 짚을 제공해주지 않으면서 벽돌을 만들라는 요구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매를 맞는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상황 자체로만 놓고 보면 분명 부당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노예들을 다그치는 방법으로 체벌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명령하면서 그 일을 해내지 못한다고 때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업반장들은 그들을 때린 이집트 관리들을 고발합니다(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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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 상황이 모세의 활동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항의를 들은 바로가 분노하며 ‘제사 타령이나
하는 그들의 게으름’을 비난하자, 기세 좋게 항의하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을 단순한 노동 조건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그들은
여기에 모세의 요구와 바로의 진노라는 정치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협상으로는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2.
바로와의 협상에 실패한 작업반장들은 모세를 만나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1절) 그 말을 들은 모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모세의 원망을 읽고 생각해 봅시다. (22절-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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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반장들은 모세와 아론을 만나자,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벌을 내리시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바로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게는 재앙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짚을 주지 않으면서도 동일한 수의 벽돌을 만들어내라는 이집트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여겼던 그들은 이제 모든 탓을
모세와 아론에게로 돌립니다. 결국 그들이 모든 불행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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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반장들은 모세와 아론을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작업반장들을 만나기 위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작업반장들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바로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았고 좋은 소식을 듣기 원했을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를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바로가 거절하자, 그들은 아무런 힘도 없이 왕궁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노예들의 노동 조건이 비극적으로 악화되는 모습을 그들은 보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모세와 아론은 작업반장들의 협상으로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업반장들이 그들에게 한 이야기는 ‘당신들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동족들은 바로와
아론의 활동을 정당한 겻으로 여기지 않았고, 바로는 그들을 조롱했습니다. 이 두 가지만 해도 모세와 아론은 힘겨웠을텐데,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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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절은 하나님을 향한 모세의 원망을 보여줍니다. 원망의 대상은 바로에서 모세에게로, 그리고 하나님께로 옮겨갑니다. 모세는 먼저 이스라엘의 고통이 하나님 책임이라고 이야기하며,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 하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어찌하여 이 백성에게 이렇게 괴로움을 겪게 하십니까?”).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원망합니다(“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까?”). 이어 모세는 이스라엘이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침묵을 원망합니다(“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구하실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모세의 원망은 4장1-17의 대화를 기억하면 그 심정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모세는 이미 40세에 동족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고,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80세의 그를 찾아오셔서 그가 이스라엘 해방의 지도자가 되도록 설득하셨습니다. 좌절과
두려움을 벗지 못한 그는 끝까지 그 일을 거부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집요하게 설득하셨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실제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자 곧바로 맞게 된 상황은 40세
때의 실패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곤경이었습니다. 그 트라우마는 그 순간의 모세를 완전히 장악했을 것입니다.
3.
모세의 절망 어린 원망을 들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6:1)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인식과 모세의 인식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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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항의에 하나님께서는 태연히 대답하십니다. “이제
보게 될 것이다”가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이스라엘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로의 거절은 모세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에게는 현실 세계의 왕은 하나님이 아닌 바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거절과 저항을 상황의 종결이 아닌 시작으로 보십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강한 손에 밀려서야 이스라엘을 내보내게 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현실에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빈약합니다.
l 삶 속으로
1.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했을 때 상황이 더 악화되어 낙담했던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절망감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습니까? 이야기해 주실 수
있다면 들려주세요.
2.
성경은 우리의 좌절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6:1). 당신의 삶에도 끝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새로운 이야기로 빚으신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 공동체에 이 이야기는 또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