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큐티 2017년 1월 22일 소그룹 성경나눔 해설

 1 22일 소그룹 성경 나눔

 자존심에 눈먼 통치자

7:14-25

l  흐름 살펴보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하셨습니다.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가진 그였지만, 왕궁에서 받은 여러 지도자적 훈련들과 그의 정의로운 성품, 그리고 광야에서 자리 잡은 온유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도자적 은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보내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라고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에게 여호와는 노예족의 신일 뿐, 태양신의 아들인 자신이 상대할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극심한 노역으로 몰아넣습니다.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표징을 통한 경고도 무시하는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연이은 재앙입니다.

l  성경 속으로

1.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 보내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16). 바로가 그 말씀을 듣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4, 17)

ð  먼저, 성경은 바로가 그 말씀을 듣지 않은 이유는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14). 그리고 그의 고집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주님께서 주님이심을 기어이 알리실 것”(17)이라는 말씀으로 볼 때, 그 고집의 내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ð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그의 고집의 원인이 바로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본문 외에도, 7:22; 8:15, 19, 32; 9:7, 34-35; 10:20). 하지만 출애굽기의 많은 다른 본문들은 그의 고집이 하나님의 의도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4:21, 7:3, 9:12, 10:27). 언뜻 보기에는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모순적인 방식으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척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출애굽기는 이 두 가지 방식으로 바로의 고집을 설명하는 것을 전혀 어색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조작하신다면,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로 지어졌다는 창세기의 전제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조종하신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조종하시는 분이시라면 인간의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그토록 고통을 당하실 이유는(특별히 십자가 사건)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어떤 재앙 앞에서 무릎을 꿇을지 알고 계신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고집을 부릴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 번 미리 말씀 하셨지만 열 번째 재앙 앞에서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으리라는 사실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열 번째 재앙으로 치셨더라면 그가 고집부릴 여지도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일부러 완고하게 만들지는 않으셨지만 그가 고집 부릴 여지를 남겨두신 것은 사실입니다. 9:15-17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단번에 치지 않으신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질병으로 그를 세상에서 곧바로 없앨 수도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에게 드러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바로의 고집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고집을 부리며 저항할 수 있을 정도의 재앙을 9번에 걸쳐 내리셨습니다. 그 목적은 노예족의 신이라며 무시당하던 하나님이 실제로는 어떤 분이신지(5:2),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재앙을 모두 경험한 이집트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11:3). 그렇기 때문에 바로가 고집을 부리며 저항한 것은 그의 탓이기도 했고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2.    이집트에 임한 첫 번째 재앙의 대상은 나일 강이었습니다. 그곳에 벌어진 참상은 어떠했습니까? (20, 21) 이 사건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경제적, 영적, 신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주었을까요?

ð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강의 모든 물이 피로 변했고, 그 물 속에 살던 모든 생물들이 질식해서 죽고 악취가 났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나일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영토를 가진 국가였습니다.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 강의 홍수는 북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절대적인 요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일 강은 이집트인들에게 단순한 강이 아니라 생명과 풍요와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 나일 강이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를 따라 피로 변해버렸을 때, 이집트인들이 느낀 공포와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피로 변한 강물은 마실 수도 없고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나일 강의 신으로 섬겼던 하피는 그들이 무시하고 미워하던 히브리인들의 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3.    강의 물이 피로 변하자 사람들은 어떻게 식수를 구합니까? (24) 이런 국가적인 재앙이 발생하면 통치자는 그에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태에 대한 바로의 관심은 어떠합니까? (22, 23) 이 사실로 볼 때 바로는 어떤 통치자입니까?

ð  강의 물이 피로 변하자, 사람들은 강 주변에 우물을 팠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하면 땅을 통해 걸러진 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물을 파는 고된 노동을 통해 약간의 물을 겨우 얻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관심은 백성들이 처한 고통이 아니라 모세와의 자존심 싸움이었습니다. 자신이 거느린 마술사들이 맑은 물을 피로 변하게 만드는데 성공하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고 궁으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모세와 그의 신이 대단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그는 만족한 것입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아랫사람들의 고된 노동으로 그는 불편함 없이 식수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집트 마술사들이 물을 피로 만든 것은 강이 피로 변한 뒤의 일인데, 그렇다면 그들이 피로 만든 물은 백성들이 어렵게 구한 귀한 물이 분명합니다. 이런 면으로 볼 때 바로는 백성들의 삶에는 지극히 무관심한, 그러나 자존심에는 매우 민감한 통치자였습니다.

l  삶 속으로

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징벌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종종 징계를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외면할 때도 있습니다. 당신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시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2.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회가 약자를 돌보고 악한 자를 징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국민들이 뜻을 모아야 하겠지만, 특히 위정자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들이 자신의 자존심이나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마땅히 돌아보아야 할 일들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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