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소그룹 나눔 문제 해설

111(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평화의 공동체를 향하여
에베소서 2:11-22
l  흐름 살펴보기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원의 비밀을 찬양하며 에베소서를 시작했습니다. 그 감격은 그가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조금도 줄어들거나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에베소 성도들도 그 풍성한 비밀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찬송과 기도로 시작된 에베소서는 2, 3장에서 본격적으로 찬송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각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 그들의 신분과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되는 구원의 공동체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 우주를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시는 하나님의 첫 번째 열매입니다.

l  성경 속으로
1.     이 편지의 수신자는 이방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교회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이 하나님, 그리고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에 있었다고 말합니까?(11,12)
ð  할례는 남자 생식기 끝의 포피(包皮)를 베어내는 의식으로서, 창세기 17장 전체가 설명하는 대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에 체결된 언약의 증표입니다(17:10).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해야 했습니다(17:12). 이것은 언약이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언약에 대한 책임을 남자가 져야 했기에, 장차 가장이 되어야 하는 모든 남자들이 이 언약적 의식에 참여해야 했던 것입니다.
남자의 포피를 베어내는 문화는 이집트를 비롯한 다른 민족들에도 존재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춘기를 지난 남자 아이의 성년식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유아 할례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행위였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한 사람의 성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ð  에베소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대부분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 짓는 가장 분명한 외적인 증표는 할례였기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할례 없는 자들이라고 비하하며 부르곤 했습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 받는 것이기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특권, 복과는 무관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상황은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리라는 믿음 안에서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들을 회복시키시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례 받지 않은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어떤 기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뛰어넘는 그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2.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라고 말하던 바울은 곧바로 그들을 포함한 우리에 대해 말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구분이 사라지고 화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높은 담으로 나뉘어 있던 그들이 하나가 되고 화평을 누리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14,15)
ð  바울은 너희에 대립하는 의미로서의 우리를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 안에 있는 존재에게는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이 누군가를 배척하는 방식으로 그 의미를 획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제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신비로운 포용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ð  화평은 더 이상 배척과 갈등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사람은 원래 화평을 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늘 투쟁하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이익을 위협하는 사람을 구분해 내고, 그를 배척해야 나의 안전이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몸부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화평의 근거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형성하고 있는 모든 원수 된 것, 즉 서로를 단절시키는 담을 그 육체로 무너뜨리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그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모든 고통을 당하시고 생명까지 희생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 희생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내어 자신의 구원을 확보해야 하는 운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 희생은 율법의 목적을 우리 안에서 이루어내었기 때문입니다. 할례와 더불어 이방인과 유대인을 확실하게 구분 짓던 율법은 이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그 구속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의 압박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한 새 사람이 지어졌다고 말합니다. 이 때 한 새 사람이라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 된 새 인류를 의미합니다.  

3.     사람들만의 화평은 진정한 화평이 될 수 없습니다. 상황이 바뀌고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또다시 차별과 갈등이 오는 것이 인간의 사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화평은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루신 또 다른 화평은 무엇입니까?(16-18)
ð  예수께서 이루신 화평은 인간들 사이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미 전제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무관하게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됨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그들의 동반타락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가 되어서 바라보게 된 방향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새 인류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열린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옵니다.

바울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그리스도 안에서는 제3의 새로운 신분으로 변화된다고 말합니다. 갈등을 빚는 둘 중의 하나가 승리하고 하나는 패배해서 얻는 그런 평화가 아니라 양쪽이 모두 변화되어 얻게 된 일치로 인한 평화입니다. 장차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렇게 변화시키셔서 온 세상에 평화를 이루실 것입니다. 교회는 그 역사의 시발점입니다.

l  삶을 향하여
1.     교회 안에서도 갈등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에도 교회가 성장하고 선교 역사가 진행되면서 나타났던 수많은 갈등에 대한 기록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갈등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의 공동체에는 주로 어떤 갈등들이 발생합니까? 왜 특히 그런 갈등이 많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에베소서가 가르치는 진리에 의하면, 우리는 그런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ð  사도행전 6:1-4는 초대교회에 나타난 헬라파와 히브리파 사이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바울의 복음과 유대주의자들의 주장 사이에 놓인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고, 15:36-41에는 2차 선교 여행을 앞두고 마가를 합류시킬 것인가에 대한 바나바와 바울 사이의 격렬한 논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갈등들은 결국 아름답게 해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귀 기울일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해결책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만이 존재하는 이상 진정한 화평이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 나하나님 앞에 선 너하나님 앞에 선 우리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교회로서 존재하면서도 여전히 성별과 직업, 외모와 경제적 수준의 차이로 하나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로 빚어진 새사람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과거의 가치관에 매여 있게 됩니다. 율법을 통하여 자신을 입증해야 하고, 타인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여 내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단절과 배척이 이루려 했던 목적을 자신 안에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더 많이 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내 삶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계속 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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