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5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소그룹 성경나눔
시험을 받을 때
야고보서 1: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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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살펴보기
야고보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인생의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그것을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시험 자체를 좋아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시험의 과정을 지나며 힘겨울 때조차도 그것을 통해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가 성숙하게 될 것을 알기에
기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련을 겪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지
못합니다. 또한 욕심에 이끌리어 유혹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책임을 그분께 전가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속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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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살펴보기
1.
시험에 실패하고 유혹에 굴복하면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가장 위험한 변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고 넘어지게 하셨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나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인생의 시험과 우리가 넘어지는 유혹(개역개정은
둘 다 ‘시험’으로 번역함)은
어떻게 다를까요?
ð 야고보는
우리가 우리의 영적, 도덕적 실패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1:13) 그런데 실패
앞에서 이런 핑계를 대는 신학적인 근거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창조자이시자
통치자로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ð 야고보는
그 이유를 ‘하나님이 악과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 분’이시라는
사실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않으신다”(1:13)는
사실은, 하나님께는 악에게 반응할 그 어떤 이유도 없으시다는 것, 하나님과
악 사이에는 그 어떤 접점도 없음을 말해줍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악은 하나님과 손뼉을 칠 도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악에 대해서는 아무런 접점을 갖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의도적으로 이용하시거나 악을 만들어내어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종종 악한 일을 통해 목적을 이루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악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ð 그런데 성경에는
명백한 하나님의 ‘시험’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실 때,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고 말합니다(창22:1). 이때의 시험이란 사람의 성품이나 능력을 입증하거나 향상시키려는
의도 안에서 주어진 위기를 말합니다. 이런 종류의 시험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메시아인지 ‘시험’합니다(막8:11).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시험’합니다(눅10:25). 이 시험은 개인 스스로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상급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시험해야 합니다(갈6:4). 하나님도 이런 시험을 종종 행하시는데, 이 시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드러내게 됩니다(출16:4; 출20:20 등등). 이 때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을 직시하게 하여 성장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2.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기까지, 죄가 자라나서 결국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오기까지 우리 마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지 생각해봅시다.
ð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넘어지는 것임을 명백하게 밝힙니다. 특히
그 넘어짐의 결정적인 계기는 ‘욕심’입니다(1:14). 물론 우리가 더 넘어지기 쉬운 상황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환경이
우리를 불안에 사로잡히게 할 수도 있고 어리석은 탐욕에 사로잡히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죄를 짓게 되는 연결고리는 우리 자신의 악한 욕심입니다.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말씀은 원래 ‘낚시’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미끼에 끌려 낚시바늘을 물어비리듯이, 우리는 욕심에 끌려 시험을 받게 됩니다. 잘못된 욕심은 우리가 원해서는
안되는 것을 품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게 되면, 우리는 악에 사로잡힌 것처럼 그것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ð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본문은 이것을 ‘출산’의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욕심은 자신 안에 씨앗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라나 세상으로 뚫고 나왔을 때,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욕심으로부터
죄가 나오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욕심은 우리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행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물론 이 욕심은 우리가 품는 것이기에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 필연성은 사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바깥으로 나온 죄는
또 다른 것의 출현을 준비하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 죽음입니다.
3.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에 대한 욕심에 이끌리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ð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기도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로부터 멀리 떨어져버린 자신을 발견합니다. 만일 이렇게 된 상황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려버린다면 우리가 회복될 가능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늘 허망한 것들에 대한 욕망에 시달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속지 말라’고 말합니다.
ð ‘속지 말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영적, 도덕적 실패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잘못된 길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지도록 하기 위해 악한 것들을 내려주시는 분이 아니라, 반대로
온갖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1:17). 만일 하나님이 환경에 영향을 받고 그 뜻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분이시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 정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십니다(1:17). 주변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의 그림자 조차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뜻은 이것입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ð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탓하며 욕심에 종 되어 죄에 머무르는 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상적인 욕구를 주셨고
그 필요들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욕구들도 그것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행동을 좌우하게 될 때 유혹의 출발점이 되고 악한 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끊임없이 우리의 욕구를 자극하고 욕망의 크기를 키우고 수단이 무엇이든 그것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욕망의 크기, 욕망의 성격을 통제하지 않고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욕망의 노예가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원리를 실현하는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요일2:16)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며, 언젠가는 풀의 꽃처럼 사라질 것임을 날마다 기억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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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향하여
1. 인생의 시련을 겪으며 유혹에
넘어졌던 경험이 있는지요? 그 때를 돌아보면 내 마음과 생각을 지배했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ð 우리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신념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때 내가 선택했어야 했던 믿음은 무엇이었는지도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눠 주십시오.
2. 지금의 나를 살펴볼 때
마음에 잉태되어 자라고 있는 욕심이 있지는 않은지요? 이 시대와 사회가 문제시 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나도 경계심을 버리고 내버려두고 있는 욕심이 죄를 낳을 지경까지 자라고 있지 않은지 살펴봅시다.
ð 우리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신념이나 감정들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자연스레 문화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들입니다. 어떤
욕심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오히려 격려 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수많은 죄를 잉태하고
있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무기력증이 왜 해결되지 못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을 찾아내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당연시하는 욕망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도 정당한지를
돌아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나와 우리 사회가 당연시하는 욕망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합니까?
3. 선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시련을 견디고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욕망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ð 앞서 언급했듯이, 욕심은 개인적으로도 생겨나지만 문화적으로도 생겨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욕망은 개인적으로 통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공동체적으로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과도한 욕심을 줄이기 위해 뜻을 함께 모으고, 그리고
과도한 욕심을 부끄러워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말씀에 입각한 신념을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을 거스르는 구체적인 실천들이 공동체 안에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