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1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21(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세상의 친구인가 하나님의 친구인가
야고보서 4:1-10

l  흐름 살펴보기
야고보서는 마치 잠언처럼 온전한 신앙과 그렇지 못한 신앙을 구분하면서, 헛된 신앙의 기만성을 집요하게 폭로합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도 사람을 사회적 조건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신앙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삶의 실천은 그 신앙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이들을 죽은 믿음이라며 책망합니다. 나아가 언어를 길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참 지혜와 거짓 지혜가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 짓습니다.

l  말씀 속으로
1.    야고보는 성도들의 두 가지 실패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평화가 깨어져 싸우는 것이며(1) 두 번째는 기도를 해도 얻지 못하는 것(3)입니다. 이 두 실패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ð  야고보는 이 두 실패의 원인을 모두 정욕으로 지목합니다. 먼저, 우리의 삶에 시기와 질투와 싸움과 살인은 모두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내적 투쟁으로서의 정욕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은 기도뿐인데, 우리는 이 기도조차도 정욕을 따라 하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도 실패하게 됩니다.
ð  정욕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욕이란, 육체의 필요를 채우려는 갈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식욕일 수도 있고, 성욕일 수도 있고, 명예욕, 권력욕, 재물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의 만족을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정욕입니다. 그렇다면 정욕그 자체는 죄가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성경에서는 정욕이라 번역되는 헤돈이라는 그리스어는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중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언제나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닙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결국 우리의 죄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방식대로 채우려는 태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내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이 음식인 것처럼 느껴져도, 실제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이고 사랑이고 휴식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배제된 철저한 자기 중심성이 무언가를 갈망할 때, 우리는 시기하고 미워하고 폭력을 행합니다. 이런 상태로는 기도도 죄를 위한 도구가 될 뿐입니다.
2.    세상과 벗된 것, 즉 세상과 아무런 갈등도 없이 잘 지내는 삶을 살게 되면 그 필연적인 결과는 무엇입니까?(4) 이렇게 극단적인 구분선이 그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5)
ð  4절은 간음한 여인들아라는 충격적인 말로 시작합니다. 이 때 우리는 4절의 대상이 실제로 간음한 여인들을 향한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자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영적인 음란 행위로 비유합니다. 하나님만을 향한 순전한 믿음과 신앙을 지켜내지 않고 다른 종교 행위나 그 세계관을 받아들일 때 이스라엘은 간음한 여인이라 불린 것입니다.
세상과 벗 된 상태라는 것은 세상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그 영향을 있는 그대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정욕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 그것을 채우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를 갈등과 투쟁, 폭력의 관계로 이끌 뿐입니다. 이를 야고보서는 우상숭배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ð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분은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방식으로 우리의 정욕을 채우려 갈망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우리를 보고 계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온전하게 채워주는 길로 인도하고 싶은 열망으로 간절하십니다.
3.    세상과 벗 된 자를 야고보는 교만한 자라고 말합니다(6).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ð  성경에서 교만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신뢰하거나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교만함은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어리석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모든 필요는 하나님으로부터 채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최고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1:7).
ð  세상과 벗 된 자는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이것은 여전히 교만입니다.
4.    성도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나타나는 변화들은 무엇입니까?(9,10)
ð  우리는 우리의 정욕을 우리 방식으로 당장 채우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즐거워하며 꿈꾸고, 웃으며 즐깁니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그런 우리를 향해 슬퍼하고 울고 근심하라고 말합니다(9). 이것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정욕을 채우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정욕을 하나님을 따라 채우려 한다면, 우리는 종종 우리의 정욕을 채우는 것을 포기하거나 연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10)는 약속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정욕을 조정하시고 진정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리라는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l  삶 속으로
1.    당신은 최근에 기도의 응답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기도를 했는지 나누어 주십시오. 그리고 본문의 1,3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야기 해 주십시오.
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기도 제목이 본문처럼 정욕만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나의 생각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한 번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을 모두 얻을 수는 없다는 말씀을 성경에서 자주 만납니다. 그런데도 쉽사리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상황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전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ð  우리는 9절과 같은 상황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나의 정욕을 세상이 주는 약속을 따라 소망하고 또 채우기 원합니다. 온 세상이 그 길을 긍정할 때, 나는 기대하며 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포기한다면, 하나님의 방식으로 내 정욕을 다스리기로 한다면, 우리는 슬퍼하고 애통하며 울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길을 따르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정반대의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모른다면, 우리는 끝까지 두려움의 종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알고 믿음으로 용감하게 선택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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