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큐티 2015년 4월 5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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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왕이 승리하시다

마가복음 15:33-41

l  흐름 살펴보기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지 세 번째 유월절, 이 날을 맞추어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발걸음은 이미 십자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시간은 그 순간을 준비하는 시간들로 차곡차곡 채워져 갔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불법적인 재판을 통해 빌라도의 사형언도를 받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체포와 심문,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의 채찍질과 조롱,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리심, 그 모든 수난을 당하시면서도 예수님은 시종일관 철저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l  말씀 살펴보기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시던 제 육시(정오)에 일어난 사건은 무엇이었습니까(33)? 그 사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달리신 지 3시간이 흐른 제 육시,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오후3)까지 지속되었다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8:9-10을 통해 보듯이 대낮에 임한 어두움은 애통함을 의미합니다. 특히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하며’(8:10)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경험하신 감정이 무엇일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또한 그것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 중 하나로서(10:21-23) 땅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2.     예수님께서 제 구시에 외치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34) 시편 22편을 펴서 읽고, 예수님의 상황과 그 시를 비교해 봅시다. 그리고 그 시편이 확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ð  땅에 어둠이 임한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습니다. 당시의 일상 언어였던 아람어로 기록된 이 말씀은 시편 22:1의 앞부분인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엘리야를 부른다고 오해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애통과 진노의 암흑이 드리우는 순간,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순간, 모든 것을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ð  시편 22편은 자신의 고통과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호소로 시작되는 시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고 더욱 단단히 붙듭니다(22:3,4). 악한 사람들과 상황들로 인한 쓰라린 고통에 대한 절망적인 묘사와 하나님을 향한 호소라는 대조적인 분위기가 이 시에서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에 대한 시인의 확고한 신뢰 때문입니다. 시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시인은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선포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22:27,28)

3.     예수님께서 숨지시는 순간 성소에서 일어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38)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ð  공관복음서들은 모두 예수께서 숨지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ð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성막 제작 규정에 따르면, 성막은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놓은 휘장에 의해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게 되어 있었습니다(26:31-33). 지성소는 언약궤와 그 위에 놓인 속죄소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고, 대제사장도 오직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16:2). 성소의 휘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성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손댈 수 없었던 이 성소의 휘장이 갑자기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찢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단절이 극복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벽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비참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최고의 사랑을 가장 강력하게 행동하고 계셨습니다. 죄인을 향한 그 사랑의 씨름은 가장 무기력해 보이는 죽음을 통해서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전환시키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l  삶 속으로


1.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상징하는 성소의 휘장을 찢으며 그 의미를 드러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습니까? 그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는 지금 어떠합니까? 그 회복된 관계를 누리고 있습니까?

ð  하나님께서 친히 성소의 휘장을 찢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길을 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여셨다면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화해를 우리는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지금 나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누리고 있는지에 따라 가늠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죽음은 죄인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소멸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나라는 인간을 향해서는 결코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하나님과 나는 한 편이 되었고, 하나님과 나의 공적은 죄가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죄를 혼자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죄와 맞설 수 있는 모든 선한 자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까?


ð  율법주의와 복음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아닌 모든 종교적인 노력들은 율법주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자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당할 저주를 피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인간의 고독한 고행과 수행뿐입니다. 하지만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령께서 우리가 믿음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우시며, 성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하시고 받으시는 삼위일체 신앙은 이미 우리가 하나님과 누리기 시작한 하나됨을 강조합니다. 죄와 맞설 능력이 없는 우리가 죄와 맞설 수 있도록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늘 새로운 힘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일반 종교의 영향 때문에 율법주의적 두려움에 빠지고 좌절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당신의 경험은 어떠한지 이야기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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