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큐티 2015년 5월 3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5월3일(주일) 소그룹 성경 나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능력
행 7:54-60
l 흐름 살펴보기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께서는 제자 공동체를 성령 충만한
교회로 든든히 세우셨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안팎으로
경험하고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장해가는 교회를 효율적으로 섬기기 위해, 사도들은 구제를 담당할 집사라는 직분을 조직하고 일곱 명의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안수하여 세웁니다. 그런데 그들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반대자들로부터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가르친다는
고소를 당합니다. 변론의 기회를 얻은 스데반은 서슬퍼런 공회의 권위 앞에서 살 길을 도모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은 바로 유대인들이라 고발합니다.
l 말씀 살펴보기
1.
스데반의 변론과 고발을 들은 유대인들이 보인 두 가지
반응은 무엇입니까?(54) 이 두 가지 반응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줍니까?
ð 그들이 보인
두 가지 반응은, 마음에 찔림이 있었던 것과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간 것입니다.
ð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스데반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스데반의 말대로 늘 율법과 성령을 거스른 이들의 후예라는 것(51,
53)과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보하는 절대적인 장소일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하며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 합당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께서
오셨을 때 일어난 기이한 일들에 대해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이 있었습니다(2:37). 그런데
그들은 그 찔림 직후에 사도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 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와 세례를 통한 죄사함을 받도록 권면합니다. 그러자
삼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풍성한 영적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유대인들은 동일한 찔림을 느꼈으면서도 전혀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것은 ‘이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간다는 것은 도저히 참기 어려운 분노 등의 격렬한 감정이 그들을 사로잡았음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와
스데반의 도전은 군중들의 내면에는 동일한 도전을 가했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처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복음 전하는 자가 좌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이 어떤 말을 하든지 그를 죽이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양심의 가책을 오히려 더 큰 분노와 미움으로 변질시켜
버리며 이를 가는 성난 군중들 앞에서 스데반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그때 그는 무엇을 보게
됩니까?(55)
ð 살기등등한 현실
앞에서 스데반의 눈이 향한 곳은 하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하나님 보좌의 환상이었습니다.
ð 그가 그 순간
하늘을 보게 된 이유는 성령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절망적이고 두려운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늘’은 태양과 구름이 떠 있는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인간의 죄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적 공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마6:10). 인간의 죄와 어리석음이 가득한 땅에서는
양심의 가책도 분노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면 그런
현실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곧 무너질 죄악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기대하며
그 눈을 하늘로 향한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
보좌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종종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에 대한 환상을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본 환상의 특징은 바로 그 보좌 우편에 예수님께서 서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시110:1) 것이 아니라 서 계신다는 사실은, 예수께서 바로 그 순간 스데반의 순교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시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3.
급기야 군중들이 스데반을 돌로 치기 시작할 때, 그가 내뱉은 말들은 무엇이었습니까?(59, 60) 죽어가는 그가
예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ð 스데반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 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며
자신의 영혼을 예수께 의탁합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며 기도합니다. 그가 이런
기도를 드린 이유는 자신의 스승이신 예수님의 길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ð 스데반의 이
두 기도는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과 거의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당신의 영혼을
의탁하셨다는 점만 다를 뿐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품으신 마음과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며
품은 마음이 거의 동일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스데반의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이겨낼 수 있었던 능력이 모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람을 향한 사랑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 주면서
모든 제자들이 걸어야 할 길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l 삶을 향하여
1.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그것은 양심을 통해서일 때도 있고, 설교 말씀이나 개인적인 말씀
묵상, 기도를 통해서일 때도 있습니다. 당신은 최근에 하나님이
지적하심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때 당신의 반응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반응이 적절했을까요?
2.
최근에 부당한 어려움 때문에 고통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사방이 대적으로 가득한 것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무엇을 의지하여 상황을 타개하고 싶었습니까? 스데반의 이야기는 그런 당신에게 어떤 도전을 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