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큐티 2015년 5월 31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바울의 선교 원리
행 14:21-28.
l 흐름 살펴보기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시작했던 최초의 전도 여행이 마무리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시작했던 여행이 지중해 섬인 구브로(Cyprus)를 거쳐 지금의 터키 남부 지방인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 마가 요한은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고 원래 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고, 바울과 바나바는 여행을 계속하여 비시디아 지방에 있는 도시 안디옥에 이르릅니다. 안디옥을 출발해서는 이고니온으로, 이고니온에서는 루가오니아 지방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로 이동했습니다. 더베에서부터 일행은 왔던 길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l 성경 속으로
1.
더베에서 방향을 돌린 이들은 어디에 들렀으며, 그렇게 들른 지역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어떤 활동을 합니까?(행 14:21-23) 이러한 활동은 처음 여행에 들렀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ð 더베에서부터 왔던 길로 돌이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갑니다. 바울 일행을 그렇게 적대하며 쫓아내었던 그 지역들을 재방문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ð 바울은 이 지역들을 다시 방문하면서 행한 사역은 (1)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고
권하는 일과 (2) 교회의 일꾼으로 장로들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역은 모두 복음을 처음 듣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이들이 환난과 박해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특히 바울이 자신들을 가르치다가 그 지역에서 쫓겨나야 하는 모습을 보았던 어린
제자들이 바울처럼 굳건한 믿음으로 설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역경 속에서도 소망과 기쁨을 잃지 않는
바울과의 재회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첫 방문은 새로운 생명으로의 초대이고 두 번째
방문은 현실 세계 속에 그 생명이 뿌리내리도록 지도하기 위함입니다.
2. 바울은 신생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14:22)고
권면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나의 현실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나의 현실이 되기 위해서 환란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나의 진정한 왕이자
주님으로 모시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왕노릇 하는 모든 세상적인 권세와 가치관들과 충돌을 빚게 되기 때문입니다.
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말씀을 ‘죽고 나서 천당에 가려면 이 땅에서 많은 고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런 생각은 고행으로
신을 만족시키거나 열반에 이르려는 비기독교적 사고, 일반 종교의 사고방식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 이루셨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죗값은 모두 예수께서 치르셨기에 우리가 자격을 얻기 위해 고난을 겪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처음 전할 때 이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을 재방문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로 작정한 이들이기에, 그들이 정말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취하며 살아가면 반드시 고난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제자들을 낙담시키는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소망을 북돋우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기로 하면 반드시 이 땅에서 갈등과 고통을 겪게 될 것인데 그 갈등과 고통을 통해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힘주심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되어 하나님 나라를 현실로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바울은 교회들을 재방문하면서 각 교회들에 어떤 조치를 취합니까? (23) 왜 이런 조치가 필요할까요?
ð 바울은
교회들을 재방문 하면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을 하나님께 위탁합니다.
ð 이런
조치가 필요했던 이유는 앞서 살핀 이유 때문에 그들이 반드시 환난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생겨난 복음의 공동체가 아무리 새로운 생명력으로 충만하고 소망으로 부풀어 있더라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환난을 만나게 되면 사람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흔들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의 흔들림은 제대로 된 다스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증폭되어 더 큰 혼란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선교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그들이 어려움에 빠져도 도와주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생교회가 복음 위에서 스스로를 세워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직을 갖춥니다. 교회를 다스릴 장로들을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장로들이라 해도 그들도 복음을 받아 들인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금식기도하고 하나님께 그들을 맡겨 드립니다. (참고: 행20:28, “…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l 삶을 향하여
바울과 바나바의 여행에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는지 13-14장을 대략 살펴보면서
점검해 봅시다. 참으로 그들의 삶에는 “많은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보고는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문을 여신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환난을 이상한 것으로, 별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
바울의 선교 여행에 나타난 교회 세움의 원리를 생각해 보고, 우리 교회가 잘 하고 있거나 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을지도 나누어 봅시다.
ð 바울의
교회 세움의 원리는 (1) 복음을 가르침 (2)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권면함 (3) 복음 위에서 자라나는 공동체가 되도록
치리회를 조직함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2.
이 세상의 본성과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안다면, 이 두 나라의 충돌은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에게는 환난이 있습니까? 그 환난은 어떤 것이며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물론 항상 환난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ð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는 땅의 원리를 따라 살고, 죽고
나서는 하늘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거부하면서도
죽음과 부활 이후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바로 오늘 이 순간에 땅의 원리보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이 땅에서의 삶과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조금도 충돌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조금도 남김없이 완전하게 이루어졌거나, 반대로
내가 이 땅의 나라에 완전히 복종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것입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겪는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어떤 것들입니까? 마땅히 환난을 겪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환난을 비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