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큐티 2016년 7월 17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해설

717일 소그룹 성경 나눔

하나님 외에는 무릎 꿇지 말라

사사기 6:1-10

l  흐름 살펴보기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 고난 부르짖음 하나님의 도우심 사사 통치기의 평화 재타락의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사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타락을 방치하실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모두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패턴은 옷니엘, 에훗, 드보라의 경우에는 그대로 반복되다가, 기드온이 등장하게 되는 대목에서는 파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백성들이 진심으로 변화될 의지가 없는데도 기계처럼 반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l  성경 속으로

1.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약탈한 방식은 어떠했습니까? (3-5)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스라엘은 어떻게 몸부림칩니까? (2)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까지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봅시다.

ð  역사적으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착취하는 경우는 늘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경우에는 공물을 요구하든지, 아니면 이따금 쳐들어와 재산을 빼앗아가고 포로를 잡아가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런데 미디안과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약탈하는 방식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이 살기 위해 곡식을 뿌리고 나면 그들은 여지없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군대가 와서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와서 아예 진을 치고 이스라엘을 장기적으로 약탈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습은 메뚜기 떼와 같았다고 묘사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수탈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산에 웅덩이를 만들고 굴과 산성을 만들었습니다.
ð  1절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은 이제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여러 번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고,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다사다임, 모압 왕 에글론,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넘겨져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옷니엘, 에훗, 드보라와 같은 사사들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죄와 은혜의 반복은 하나의 법칙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을 당연시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낭비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의 정도는 더 깊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고통에 시달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6). 그들이 부르짖은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부르짖음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8) 하나님의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ð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전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본문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당할 때, 먼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기 전에 그들은 산에 웅덩이를 만들고 굴과 산성을 만들며 자구책을 찾습니다. 고난이 깊어지는 과정에서도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하려 했고, 회개하며 하나님 의지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일상이 이미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데 익숙했기에, 그 고난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악을 행한 죄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수탈과 가난으로부터 건져달라는 간구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한 죄에 대한 회개였을 것입니다.
ð  이스라엘은 여느 때와 같이 당장 사사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해 주기를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은 사사가 아니라 선지자였습니다. 은혜를 낭비하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동판매기처럼 반응해주시기를 거절하신 것입니다. 고통으로 부르짖는 그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구원이 아니라 말씀이었습니다. 구원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룩한 영광으로의 부르심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하시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입니까? (10) 이것은 어떻게 이스라엘을 실패하게 만들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책망하시면서 상기시키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8-10)

ð  구원을 간구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고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지적합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아말렉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가나안의 신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ð  이것은 단순히 용기를 내었느냐 내지 못하였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구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안은 인간에게 불가피합니다. 인간은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의미도 완전하게 알지 못합니다.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능력은 유한해서 자신의 힘으로 어떤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불안은 하나님을 의존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불안의 상태에 그치지 않고 어떤 대상에게 무릎꿇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상황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두려움의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불안 상태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니라 가나안의 신들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가나안에서의 구원, 가나안에서의 샬롬은 하나님이 아니라 가나안의 신들에게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두려움의 상대어는 용기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ð  두려움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두려움에 빠져든 이유를 지적하십니다. 그것은 그들이 출애굽의 하나님, 가나안 정복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그 어떤 신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의 삶이라는 불안한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간직하고 상기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늘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진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시대의 불안에 쫓겨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두려워하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두려움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이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이었듯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기억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는 우리가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인간은 불안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지식과 능력의 한계로 인해 인간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 누구에게 주권을 넘겨 줄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의 불안 때문에 가나안 신들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들에게 주권을 넘겨준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전쟁의 역사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다른 무엇도 두려워하며 자신을 내어 맡겨서는 안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나에 대한 주권을 하나님 외의 그 누구에게도 내어 놓지 않는, 그 누구에게도 두려움으로 종 되지 않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l  삶을 향하여

1.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교회는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요? 우리 공동체를 향한 악한 주권들을 떨쳐 내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2.    내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는 삶의 영역이 있다면, 그 영역에는 반드시 내가 두려워하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영역만큼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예됨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중보와 격려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용기를 내어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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